시작하며: 가장 끊어내기 고통스러운 최후의 탯줄
우리는 앞선 글들에서 당신의 피를 빨아먹는 가난한 친구들을 차단하고, 사회가 강요하는 알량한 도덕심(이타주의)을 쓰레기통에 처박았습니다.
이제 당신 주변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매트릭스에서 탈출하려고 발버둥 칠 때,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강력한 힘으로 당신의 발목을 잡고 지옥으로 끌어내리는 마지막 보스가 남아 있습니다.
바로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빚을 졌다고 생각하는 존재, ‘부모님(가족)’입니다.
“주식하면 패가망신한다, 무조건 적금 부어라.” “남들 다 가는 안정적인 대기업이나 공무원이 최고다.” “사업은 아무나 하냐? 빚내면 인생 끝장이다.”
당신의 부모님은 당신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 조언을 합니다. 하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뼈를 때리겠습니다. 당신의 부모님이 현재 수백억 대의 자산가가 아니며, 평생을 돈 걱정에 시달려 온 평범한 서민이라면, 그분들이 당신에게 해주는 모든 경제적 조언은 완벽한 ‘가난의 레시피’이자 끔찍한 저주입니다.
오늘 이 글에서는 혈연이라는 이름으로 대물림되는 가난의 족쇄를 적나라하게 해부하고, 부모의 낡은 철학을 당신의 뇌에서 잔인하게 거세하는 방법을 폭로합니다.
1980년대의 낡은 소프트웨어로 2020년대를 살아가는 비극
부모님이 당신에게 주입하는 재무 철학(“저축해라, 빚내지 마라, 튀지 말고 성실하게 일해라”)은 그분들이 살아왔던 1980~1990년대에는 완벽하게 작동했던 성공 공식이 맞습니다.
당시 대한민국은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였고, 은행에 돈을 넣어두기만 해도 연 15% 이상의 이자가 복리로 굴러갔습니다. 집값은 월급을 성실히 모으면 누구나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죠. 그 시절에는 빚을 무서워하고 은행을 신뢰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생존법이었습니다.
하지만 2020년대의 자본주의 매트릭스는 어떻게 변했습니까? 앞서 수십 편의 글에서 증명했듯, 은행의 예적금은 인플레이션으로 원금을 소각하는 자살 행위이고, 빚은 자산을 불리기 위해 기득권이 사용하는 필수적인 치트키이며, 월급쟁이의 성실함은 자본가의 자산을 불려주는 땔감으로 전락했습니다.
부모님은 당신을 사랑하지만, 그분들의 머릿속에 깔린 경제 소프트웨어는 이미 40년 전에 유통기한이 끝난 낡은 OS(운영체제)입니다. 최신 스마트폰에 1980년대 도스(DOS) 프로그램을 깔면 기계가 박살 나듯, 부모님의 낡은 철학을 21세기의 당신 인생에 적용하는 것은 확정된 파산을 향해 걸어가는 짓입니다.
‘효도’라는 구역질 나는 프레임: 감정과 자본을 분리하라
한국 사회에서는 부모의 말을 거역하는 것을 천하의 불효이자 대역죄로 취급합니다. 그래서 2030 세대들은 자신이 모은 알량한 종잣돈을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안전한 적금에 묶어두고, 부모님이 원하는 번듯한 명함(공무원, 대기업)을 유지하기 위해 상사의 갑질을 견디며 영혼을 갉아먹습니다.
냉정하게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십시오. 당신은 요리를 배울 때 요리를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람에게 조언을 구합니까?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왜 당신은 ‘자본주의 생태계에서 부를 축적하는 법’을, 평생 돈 때문에 고통받아온 가난한 사람(부모님)에게 배우려 하십니까? 단지 당신과 유전자를 공유하고, 당신을 낳아주었다는 이유만으로 말입니다.
부모님에 대한 ‘인간적인 사랑’과 부모님의 ‘재무적 조언’은 철저하고 냉혹하게 분리되어야 합니다. 부모님을 인격적으로 공경하고 사랑하되, 그분들의 입에서 나오는 돈과 직업에 대한 이야기는 스팸 메일처럼 완벽하게 차단하고 무시해야 합니다. 감정과 자본의 룰을 섞는 순간, 당신은 부모가 겪은 가난의 굴레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물려받는 ‘경제적 연좌제’에 걸려들게 됩니다.
절대 발설하지 마라: 부모는 당신의 날개를 꺾는다
만약 당신이 이 시리즈의 가르침을 깨닫고 “엄마, 나 이번에 월급 모은 걸로 저평가된 주식을 샀어” 혹은 “퇴사하고 무형자산을 구축하는 비즈니스를 시작할 거야”라고 말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부모님은 극도의 공포에 질려 당신을 말릴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호소할 수도 있고, 화를 내며 당신을 바보 취급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21세기의 자산 증식 방식(투자, 플랫폼 비즈니스, 레버리지)을 무조건 ‘사기’이거나 ‘도박’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흔들리지 않을 만큼 강철 같은 멘탈을 가졌다면 다행이지만, 대다수는 가장 사랑하는 가족이 자신을 걱정하며 쏟아내는 감정적 호소(Emotional Blackmail)에 무너지고 맙니다. 결국 “그래,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라며 투자를 멈추고 다시 매트릭스의 온순한 노예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진정한 자본가로 거듭나려는 자는 절대 자신의 투자 계획이나 비즈니스 진행 상황을 가난한 가족에게 발설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경제적 자유를 이루어 압도적인 현금 다발을 부모님 책상 위에 올려놓기 전까지, 당신의 계획은 무덤까지 가져가는 완벽한 비밀이어야 합니다.
진짜 효도는 ‘압도적인 자본’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당신은 부모님께 매주 전화를 걸고, 용돈 10만 원을 쥐여 드리며, 명절에 찾아가 안부를 묻는 것이 효도라고 착각합니다.
이전 글(9편)에서 묘사했던 은퇴한 5060 세대의 끔찍한 미래, 즉 ‘의료비 파산’의 상황을 떠올려 보십시오. 당신의 부모님이 중증 질환에 걸려 쓰러졌을 때, 한 달에 400만 원이 넘는 간병비와 비급여 치료비 청구서가 날아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때 가서 부모님 손을 붙잡고 “사랑합니다, 죄송합니다”라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은 효도가 아닙니다. 그것은 그저 돈이 없어 부모를 죽음으로 내모는 무능한 자식의 구역질 나는 자기 연민일 뿐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진짜 효도는, 부모님이 늙고 병들었을 때 대학 병원의 1인실 특실을 결제해 드리고 최고급 간병인을 망설임 없이 고용할 수 있는 ‘압도적인 현금(자본)’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그 압도적인 부를 쟁취하기 위해서라면, 지금 당장 부모님과 경제적인 관점에서 의절에 가까운 대립을 하더라도 부모님의 낡은 철학을 짓밟고 당신만의 길을 가야 합니다. 가난을 대물림하여 다 함께 진흙탕에서 익사하는 것보다, 당신 혼자 독하게 살아남아 훗날 튼튼한 동아줄을 내려 가족을 구출하는 것이 수백 배 더 숭고한 이기주의입니다.
매트릭스 탈출: 완전한 고독 속에서 탄생하는 자본가
가난한 친구들을 쳐냈고, 위선적인 도덕을 버렸으며, 이제 당신의 뇌 속에 깊이 박힌 부모님의 가난한 철학까지 완벽하게 도려냈습니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이제 우주에 완벽하게 혼자 남겨진, ‘가장 고독하지만 가장 강력한 자본의 주체’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고, 누구에게 핑계를 댈 수도 없습니다. 당신의 통장 잔고가 곧 당신의 존재 증명이 되는 차갑고 냉혹한 세계에 첫발을 디딘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모든 심리적 방해물을 제거하고 부의 추월차선을 달리려고 할 때, 자본주의 시스템이 당신의 목줄을 쥐고 흔드는 ‘물리적인 한계’가 하나 남아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평범한 월급쟁이가 아무리 아끼고 투자해도 부자가 될 수 없도록 수학적으로 설계된 감옥, [제24편: 근로소득의 수학적 한계: 당신의 시간은 자본의 증식 속도를 절대 이길 수 없다]에 대해 피도 눈물도 없는 팩트로 폭격해 드리겠습니다.
‘하루 24시간’이라는 절대적인 물리적 한계를 찢어버리고, 나의 시간을 복사하는 마법의 공식을 알고 싶다면 다음 편을 절대 놓치지 마십시오.
(제24편: 근로소득의 수학적 한계: 당신의 시간은 자본의 증식 속도를 절대 이길 수 없다 에서 계속됩니다)